입문(入門)

어떠한 연유로 시작이 되었다 하여도 실제적인 입문은 그다지 쉽지 않다.
정통 문파를 선택하는 일도 어렵지만
스승다운 스승을 만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백 수천의 무예가 있고 또 그 추종자들이 있어 명맥을 이어간다.
그런데 언젠가는 그 폭이 커지기도 하고 맥이 끊어져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지나서 그것을 복원시키려 노력하기도 한다.
많은 도공들이 청자를 만들던 때는 그것이 보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대가 끊어진 시대에서는 그 귀중함이 더욱 빛나게 된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가치를 달리 부여하는 한 예가 된다.
무예는 살상을 위주로 하는 격투 기술로서의 의미도 갖지만
정신적 깨달음을 위한 수도자(修道者)의 길로 향하는 입구(入口)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입문(入門)하려는 사람이나 입문을 받아 주는 사람 사이에는
극히 미묘한 인연이 있어야 한다.
몇 가지의 격투 기술을 전해 주고 돈으로 댓가를 환산하는
현대적인 의미가 아닌 이야기에서......

 


단련

입문이 되면 그 때부터는 고행의 연속이 이어진다.
기(氣)를 체감하기 위한 고행, 기를 양성시키기 위한 고행,
육체와 정신을 접근시키기 위한 고행이 연속된다.
철괴를 두드려서 원하는 형태의 도구를 만드는 대장간의 일과와 같이
다듬고 두드려 반복시키기를 끊임없이 계속한다.
하나의 예리한 병기가 되고
인격자로서의 기반이 다져지는 시기가 단련의 시기이다.
자신의 고통과 싸워이길 수 있는 정신력은 영혼에서 나오는 힘이다.
그렇듯이 육체를 이길 수 있는 영혼의 힘은 인내에서 싹트고,
반복에서 그 싹은 힘차게 자라며 평범한 인간과 구별지어지기 시작한다.
육체의 힘이 넘치고 기(氣)가 충만하고
기의 흐름이 전신에 팽배하여 자신을 억제하기 어렵게 된다.
이 시기에는 정신적 안정이 확립되지 않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되며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자신감이 충만하여 어느 누구와도
격투를 하고 싶은 도전의 충동이 생기며 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면 도(道)의 입구에서 포기해 버리는 패륜아로 변한다.

 


회의(懷疑)

끊임없는 단련과 도전의 욕망을 승화시켜 정신이 살찌며, 이제
도(道)의 진가를 깨닫기 시작하고 마음에는 기쁨이 움트기 시작한다.
이 시기가 되면 그 동안의 긴 세월 속에서 웃고 울었던
많은 일들이 뇌리를 스치기 시작하며, 불연듯 자신이 초라하게 비쳐진다.
왜 이렇게 힘든 인생을 택했는지 후회된다.
육체를 학대하고 정신을 학대하며 고통을 딛고 일어선 결과로 얻어진
도량과 공력(功力)을 허비하기 시작한다.
필요없는 일에 집착하며 손해보는 일에 뛰어들고
술을 퍼마시고 쓰러지거나
울부짖고 방탕아가 되기도 한다.
정신의 문이 열려지려는 시기에는 신(神)의 존재를 지독하게 비판하며 거부한다.
평온을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방황을 계속한다.
몇 일씩 여행을 하거나 몇 일씩 울기도 하고 잠만 자기도 하며 굶기도 한다.
극심한 비관론에 빠져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각성(覺醒)

어느 날 아침 조용한 햇살이 눈앞에 비쳐 들어오고
대 자연의 신비와 사랑이 전개된다.
만물이 사랑스럽고 고통이 사라진뒤의 행복감이 가슴속에서 출렁인다.
손을 들어 시선을 주면 기(氣)가 발(發)하고 안으로
돌이켜 바라보면 기(氣)가 운행한다.
이 단계에서 무술가는 권법을 창시하고 기공(氣功)을 구성하며
득도의 원천을 찾아낸다.
타인의 심정이 내속에 있어서 내 마음을 움직이듯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 말이나 작은 몸짓, 손짓 하나로도 상대를 크게 감동시키고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풀어준다
무의(武醫)는 동본(同本)이라는 어원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자신을 구제하고 타인을 구제함을 서슴치 않으며 구도의 길로 맹진하게 된다.


정진(精進)

만나는 사람들마다 도를 얻고 행복을 찾게 되니
구도자는 그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많은 사람의 정신을 깨우쳐 준다.
육신의 동작이 영혼의 동작과 합치하니
권선일체(拳禪一體)의 근원을 찾아 낸 것이다.
제자가 구름같이 모여들며 세상 사람들의 칭송과 멸시와 시기가 혼합되어
말이 끊이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는 노인이라 하여도 일일백련(一日百練), 일수만련(一手萬練)의
의지를 보이며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묘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기공(氣功)도 심오하여 창이나 칼이
들어가지 못하며 눈빛만으로도 상대가 고개를 숙이는 경지에 이른다.
득도는 우주의 원리 속에 합치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도(道)를 찾은 구도자는 그 기쁨을 억누르며 근엄한 미소를 잃지 않고
신(神)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깊이 되새기게 된다.
가식이 사라진 자신의 진면목은 바로
신의 섭리속에 매여 있는 자신의 근원임을 깨닫는다.
신의 사랑이 자신의 영혼에 가득하며 그 사랑은
모든 대 자연을고 흘러나가 돌도 바위도 물도 나무도 흔들리는 바람도
다시 느껴지고 사랑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정진(精進)의 시기가 무르익으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 그 자체이기를 바라게 된다.


은둔(隱遁)

깨달음에 도달한 구도자는 깊은 명상에 빠져
자연 그 자체에 스며든다. 히말라야 산중의 요기 들처럼
세상을 버리고 은거하여
결국은 나 속에 세상을 넣어 버리며 무한한 고요의 세계에 접어든다.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신과의 대화, 자연과의 대화를 그치지 않는다.
동양의 구도 사상이 이것이며 요기(Yogi)의 명상의
세계가 이것이며 동양 무술가의 궁극적 도전 목표가 이것이다.
이 길의 끝에 이르면 성인이 되는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의 진리를 깨달아 한 송이의 연꽃처럼 미소를 짓는다.
그 풀꽃 한송이와 같이
청초한 미소를 머금고 언제까지나 자연속에 피어 있는 진리가 된다.

                                   ㅡ 동양무예   동양무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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