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력 기술

전기중력학(Electrogravitics)=Biefeld–Brown

니콜라 테슬라 발명,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에 의해 발전.

magneto-hydrodynamics,electro-fluid-dynamics,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Thomas Townsend Brown,USA),

폴 알프레드 비필드(Paul Alfred Biefeld CH)박사,

이 용어는 1956년부터는 널리 사용되었다. 전중력의 효과는 잘 알려진 자기 유체 동력학(magneto-hydrodynamics)에 대응하는 전기 유체 동력학(electro-fluid-dynamics)내에 더 널리 연구되었다. 전기운동학은 전기적으로 발생된 추진력을 위해 브라운에 의해 사용된 용어이다. 프랜 드 아키노(Fran De Aquino )는 전중력 효과의 원인과 적절한 고정을 설명하는 계산을 출판하였다.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의 가설에 기초한 연구는 전중력학이 비행기나 우주선의 추진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포함한다.

 

분야는 1950년대 중반에서부터 인기있었지만 그 후로는 빠르게 인기가 식었다. 한때, 글렌 L. 마틴 사는 중력에 관심이 있는 과학자를 찾는 광고를 설치하였다. 전중력 과정은 전기장을 사용하여 물체를 하전시키고 중력 효과를 일으킨다. 정전기 부양이 예를 들어서 로버트 밀리컨의 기름 방울 실험에 사용되었고 중력 탐사선 B에서 발사시에 자이로스코프를 달기 위해 사용되었다. 언쇼 정리에 때문에 고전적인 정전기 장의 정적인 배열이 물체를 안정적으로 부양하기위해 사용될 수 없었다. 두 장이 소멸하는 위치가 있지만 불안정하다. 그러나 위치 안에 물체를 잡기 위해 전기장을 동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사용할 수 있다. 달위에서 광전 효과는 달의 표면위의 근원에서 먼지 유동의 대기를 현성하는 표면위의 먼지의 얇은 층을 하전시킨다.

 

비필드 브라운(Biefeld–Brown ) 효과는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Thomas Townsend Brown ,USA)과 폴 알프레드 비필드(Paul Alfred Biefeld ,CH)박사에 의해 발견되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연구되었는데 중력 제어 추진 연구의 공공연하던 시기동안 이 전기 추진 효과의 사용에 관해서였다.

1964년 동안 메이저 드 세버스키(Major De Seversky)는 사실,미국 특허 내의 그의 관력 작업을 많이 발표하였는데 이들 장치에 관한 임의의 가능한 오해를 미리막을 목표였으며 이렇게 나는 기계를 이오노크래프트(ionocraft)라 이름 지었다. 그 다음의 여러 해 동안 많은 약속하는 개념이 포기되었고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잊혀졌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은 EHD 영역에서 크게 진보하였다. 효과는 단지 근래에 다시 인기있게 되었고 그러한 나는 장치가 이제 EHD 추진체로 알려져 있다. 이 효과에 의해 부상된 단순한 독무대 판이 가끔 리프터라 불린다.

 

바이런 프레이스(Byron Preiss)와 같은 이들은 전중력학 개발을 물리를 충분히 모르는 엔지니어들에 의해 시작된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관한 많은 이별로 고려하였다. 프레이스는 전중력이 확장된 생물학(exobiology)과 같이 그의 의견에 연구를 위한 하나의 샘플(시편)도 없는 과학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보통 리프터라 알려진 이오노크래프트 장치와 그들의 개발을를 무시하였다. 이들 전기유체 동력학 장치는 공기내에 스러스트를 생성하는데 움직이는 부품없이 전기에너지를 사용한다. 폴 라비이올렛은 계속 브라운의 가설과 그에서 유도된 아이디어를 주도하고 출판한다.

 

음파 공중부양

음파 공중부양은 매질 안에서 고면밀도음파에서 음파의 방사압을 사용하여 매질 안에 물질을 띄우는 방법이다. 음파 공중부양은 고면밀도음파의 비선형 효과 때문에 가능하다. 이를테면 오쯔카 연구소에서 시연된 것과 같은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음향을 만들어 내지 않고 물체를 공중에 띄울 수 있다. 한편 다른 것들은 약간의 들을 수 있는 잡음을 만들어 낸다. 이 효과를 만들기 위해, 물체 아래에 파동을 생성하고 그것은 다시 그 음원으로 반사시키는 데에서 큰 음장을 생성하기 위한 아크릴 유리 탱크를 사용하는 것까지 많은 방법들이 있다.

음파 공중부양이 충분한 진동음이 주어져서 들을 수 있는 것의 한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현재 이 힘에 의해 들린 최대량은 수 킬로그램이다. 음파 공중부양기들은 대개 산업에 사용되고 미항공우주국(NASA)와 같은 반중력 연구자들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상용으로 얻을 수 있다.

 

광 공중부양

광 공중부양광학 공중부양은 아서 애쉬킨에 의해 개발된 방법으로 물질이 광자 운동량 전가로 나오는 상방향력에 의해 중력의 하방향력을 상쇄하여 공중부양 된다. 전형적으로 수직 상방향의 충분한 면 밀도의 집광 레이저 빔의 광자 방사압은 서스펜션내의 작은 입자들 잡을 수 있는 안정된 광 트랩을 허여하는 하방향 중력을 상쇄한다.

전형적인 마이크로미터 크기(직경)의 투명 유전 구체 예를 들어서 퓨즈드 실리카 구, 기름 또는 물방울이 이런 형태의 실험에 사용된다. 레이저 방사는 아르곤 이온 레이저 또는 파장조정 가능한 염료 레이저의 그것과 같이 파장내에 고정될 수 있다. 요구되는 레이저 파워는 수십 마이크로 미터의 직경에 집광되는 1 와트 정도이다. 구형 광 캐비티 내의 공명에 의존하는 표면 형상에 관련되는 현상이 여러 연구 그룹에서 연구되었다. 금속성 마이크로 구와 같은 빛나는(반사하는) 물체에 대해서 안정된 광 공중부양은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이오노크래프트는 이온에 의해 추진되는 항공기이다. 보통 리프터라 불리며 전자기유체역학적인 장치로 움직이는 부분이 없이 전기에너지만을 사용하여 공기중에 추력을 발생시킨다.

이오노크래프트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전자유체역학(EHD) 실험이 피크에 도달하였다.

 

 

 

반중력 연구의 선구자,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핵심멤버 중 한 사람,타운젠트 브라운,

전기를 이용한 반중력 발생 장치를 발명,

1905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자네스빌에서 태어났다.

1922년에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Cal-Tech)에 입학하기 이전,

고등 학생 시절에 고전압 장치를 통한 중력 조절 현상을 실험적으로 발견.

칼텍의 대학 신입생 시절,

브라운은 자신이 발견한 '전기력에 의한 중력 제어'라는 현상을

교수들에게 문의하고 다녔는데,무시당하고 말았다.

1923년에 인근의 케년 칼리지로 전학했다가

1924년에는 덴니선 대학(Dennison Univ.)으로 옮겨갔다.

비펠드 교수를 만나게 된다.

폴 알프레드 비펠드(Paul Alfred Biefeld) 박사는

1867년 독일 태생으로서 스위스의 취리히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8명의 동창생 중 한 사람이 아인슈타인 박사이다.

비펠드 박사는 독일에서 대학교수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와

당시의 덴니선 대학에 재직하면서 물리학과 천문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는 한낱 풋내기 대학생인 브라운 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이로부터 비펠드 교수 연구실에서 4년 간 이들의 공동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서 이들은

최소한 1% 이상의 중량 감소를 객관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었으며

이러한 실험 결과를 1929년에 '과학과 발명(Science and Invention)'이라는

학술 잡지에 처음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중력을 제 어 하는 혁신적 방법(How I Control Gravitatio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논문은 그 당시의 과학계로부터 어떠한 주목도 받지 못하였다.

1930년에 브라운은 워싱톤의 해군연구소(Naval Research Lab)에 취직하는데

이때부터 1952년까지 20여년 동안, 그의 실제 관심사였던 반중력 연구보다는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다양한 분야의 전문 기술자로 근무하면서 경력을 쌓게 된다. 해군연구소 근무 시절에는 레이다 개발 관련 업무에 주로 종사하였는데, 브라운은 이때 해군에서 실시한 세계 중력 지도 작성(International Gravity Expedition) 프로젝트와 존슨-스미스니언 심해 탐험(Johnson-Smithsonian Deep Sea Expedition)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연구와 탐사활동을 수행 하기도 하였다. 1933년부터 이들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중단됨에 따라 해군 예비대에 소속되어 여러 가지 잡다한 제반 기술 보조 업무를 맡게 된다. 1939년에 해군연구소를 퇴직하고 메릴랜드로 이사하여 잠시 민간 기업체에 취직하였지만 바로 이내 군복무 징병이 실시되어 해군 장교로 군복무를 다시 하게 된다. 해군 장교로서 브라운에게 맡겨진 연구는 주로 전자기장이나 초음파를 사용하는 기뢰 제거 작업을 연구하는 활동이었는데, 바로 이시기인 1939년에서 1942녀까지의 기간 동안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관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42년에 브라운은 해군 소령의 지위로서 버지니아 노폴크에 위치한 해군 레이다 스쿨(Navy Atlantic Fleet Radar School)의 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얼마 후인 1943년에 심한 신경성 질환을 앓게 되어 군의관의 권고로 결국 해군 장교 생활을 퇴임했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Philadelphia Experiment) 

영화와 책을 통해 소개된 이래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1940 년경 미 해군에서 비밀리에진행되었다고 알려진 저 유명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그리고 이 사건의 증언자들이 주장하듯 타운젠트 브라운이 이 실험에 실제로 깊숙히 관여했는지 어떤지는 아직도 명백하게 규명되고 있지 않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브라운에게 이 사건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브라운 자신은 아주 간략한 몇 마디 말외에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책이 출간된 이후인 1980년대 초에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레이놀드에게 사적으로 말하기를, 윌리암 무어가 저술한 그 책은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부분이 많다고 간략히 언급하였다는데 정작 과장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회피하였다.

레이놀드는 1994년에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었던 타운젠트 브라운의 추모 기념 페널 토론회에서 저명한 물리학자 엘리자베스 라우셔 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이러한 브라운의 이야기 를 재삼 언급하고 있다. 이 토론회에서 라우셔 박사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대해 색다른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텔레포테이션과 시, 공간 여행이 실제로 발생하였다기보다 이 실험에서 집단 환각 상태가 발생하여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착각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실제로 특수 전자기장 은 인체의 두뇌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으로서 일지적인 기억 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 라우셔 박사는 이러한 현상과 마찬가지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 군함을 레이다에 포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강력한 전자기장을 발생시켰다면 이 전자기장의 영향에 의해 전체 승무원들이 일시적인 정신 착란 상태에 빠져서 마치 자신들이 실제로 시, 공간 여행을 겪은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여하간 1940년경에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진행되었다는 바로 그 시기에 타운젠트 브라운은 실제로 해군의 레이다 전문가로서 노폴크에서 근무하던 중이었으며, 1943에는 심한 신경성 질환을 앓았고 이 때문에 군의관의 권고에 따라 해군 복무를 은퇴하였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들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와 실제로 어떠한 관계였는가는 브라운 자신 또한 결코 언급한 적이 없으므로 여전히 미스테리일 뿐이다.

 

2차대전 중 미국의 공간이동 실험

필라델피아 실험(Philadelphia Experiment)이라 불리는 이 실험은 워낙 유명한 얘기라 이곳저곳에서 들어보았을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다시 소개하는 것은 최근 프레스티지 영화를 통해 니콜라 테슬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이다.

1943년 행해진 이 실험의 최초 목적은 '투명' 배를 만드는 것이었다. 적군의 시야, 레이더에서 벗어나 항해를 하기 위한 것으로, 그 이론의 바탕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의 통일장 이론이 깔려있다. 통일장 이론은 전자기, 중력 등 힘의 근본이 사실상 하나의 공식으로 서술할 수 있는 것으로 자유로운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여튼 이론은 충분한 장비와 에너지만 갖추고 있다면 목표 주변의 빛을 구부려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 중이였던 당시 상황에서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장비는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 해군은 실험에 많은 돈과 자원, 그리고 실험에 쓸 구축호위함 USS Eldridge를 투입하게 된다

실험은 1943년 여름 시작되었고 어느 정도 성공적이였다고 볼 수 있다. 1943년 7월 22일 필라델피아항구에서 행해진 첫번째 실험에서 거의 완전하지는 않지만 시야에서 사라지는 목표는 달성했다. 대략 '녹색 안개' 덩어리 정도의 모습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심각한 구역질로 불평했으며,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만큼 단순히 레이더에서 벗어나는 정도로만 수정하게 된다.

재정비한 장비를 가지고 10월 28일 두번째 실험을 시도한다. 두번째 실험에서는 거의 완전히 보이지 않는 상태에까지 도달했다가 푸른빛과 함께 시야에서는 물론 레이더에서도 사라졌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항에서부터 600km 떨어진 노퍽에 나타났다가 다시 필라델피아 항으로 돌아왔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순간이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실험의 결과는 끔찍했다. 대원의 일부는 사망, 실종 그리고 일부는 갑판의 철제구조물에 융합되어 죽어있었다. 나머지 대원들 역시 심각한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 분열증에 걸렸던 것이다. 이 참혹한 결과에 해군은 즉각 실험을 중단하고 관계자들의 입을 막는 한편 실험에 참가했던 대원들을 세뇌하여 실험을 은폐하였다.

여기서 테슬라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실험의 1차 책임자가 테슬라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는 검증된 사실이 아니고, 필라델피아 실험 자체도 진짜로 행해졌다는 증거가 없다. 처음 이야기가 나온 것은 Morris Jessup이라는 아마츄어 천문학자이자 UFO연구가였던 사람이 과거 실험에 참가했다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몇 장의 편지에서부터 흘러나온 이야기이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이었기에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며 1990년에 영화 The Philadelphia Experiment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레인보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투명/스텔스 등을 목적으로 행해진 프로젝트였다.

 

UFO와 같은 새로운 비행체 개발

1943년에 해군에서 은퇴한 이후로 브라운은 몇몇 민간 기업체와 연구소 등에 레이다 기술 자문을 해주는 것으로 생업을 삼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다시 반중력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 그가 발견하였던 고전압에 의해 반중력 발생을 응용하여 새로운 타입의 비행체를 개발하는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1950년대에 이르자 실제로 소위 반중력 비행 접시를 꿈꿀 수 있는 단계의 가시적인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었다.

 

1952년에 오하이주의 클리블랜드에 정착하여 그가 윈터하벤 프로젝트라고 이름붙힌 공중 부양 비행 접시 제작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이를 위해서 정부 기관 및 여러 단체들에게 지원 협조를 요청하는 안내문을 송부한다.

한편, 50cm크기의 소형 원반형 장치를 제작하여 이 장치가 천천히 공중 부양하는 모습을 1953년에 최초로 공개 시현하였다. 50kW의 고전압으로 충전된 이 장치는 초속2m정도의 속도로 공중으로 수직 상승하는데, 이 당시의 공개 시현 장면은, 당시 세계의 여러 잡지들에서 도 상세히 소개되었다.(스위스에서 발간되니 항공 전문지〈Interavia〉잡지의 1956년 봄 제6 권 제5호에 브라운의 반중력 연구 전모와 최초의 공개 시현 장면이 가장 상세히 수록되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브라운의 시도와 노력들은 실질적으로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정부 기관이나 연구소 등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브라운의 연구 결과에 대해 비교적 냉담한 편이었던 것이다.

 

브라운과 관련이 있었던 미 해군연구소는 최초에는 관심을 가지고 브라운이 제시하는 프로젝트에 대하여 실효성 여부를 조사 검증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미 해군연구소 자체 조사팀을 구성했지만, 이 조사팀은 오히려 브라운의 장치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 를 제출하였고 이것이 다른 정부 기관 등에서도 브라운의 연구를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1952에 작성된 미 해군연구소(Office of Naval Research) 의 자체 보고서는 현재 공개되어져 있다. 이 보고서에는 그 당시의 브라운의 연구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조사 수록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는 브라운의 윈터하벤 프로젝트가 실효성 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는 근거를 크게 두가지 점에서 지적하고 있다.

 

첫 번째로, 브라운의 연구 결과가 과연 반중력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브라운이 만든 장치가 수직으로 공중 부양하는 것은 반중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일종의 공기 바람의 힘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뒤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브라운의 반중력 현상이란, 고전압의 (-)극에서 (+)극쪽으로 미지의 새로운 추진력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미지의 새로운 추진력은 브라운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중력 제어 현상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압으 (-)극과 (+)극 사이에서 공기층이 이온화 되고, 이온화된 공기가 일종의 젯트형 돌개 바람을 일으키면서 이 바람의 힘에 의해 장치가 위로 들어올려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조사팀의 결론이었다. 브라운의 공중 부상 장치가 공기 바람에 의해서 추진력을 얻고 있다는 첫 번째의 결론이 사실이라면, 이 장치는 공기층이 희박한 높은 고도의 상공에서나 진공 상태와 같은 우주 공간에서는 추진력이 발생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주 여행을 위한 새로운 비행체 제작의 원리로는 부적당하다는 것이 미 해군연구소 조사팀의 두 번째 결론이었다.

또한 이 보고서는 당시에 새로운 비행 추진 장치로서 한창 각광받기 시작한 화학 연료 로켓 엔진과 브라운 장치를 서로 비교하면서, 공기층이 존재하는 대기권 내에서 비행한다 하더라도 브라운 장치는 로켓 엔진에 비해 그 효율성이 매우 뒤떨어진다고 결론짓고 있다. 미 해군연구소의 이러한 결론들은 다른 군 당국이나 정부 관련 기관들이 브라운에게 자금 지원을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짓게 한 가장 커다란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두가지 결론이 모두 틀린 것으로 판명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53년 이후 브라운은 잠시 미국을 떠나 1956년까지 주로 유럽을 돌아다니며 그의 연구결과와 장치를 소개하고 또한 이 시기에 더욱 진전된 자신의 연구 실험 결과들을 발표하게 된다. 이때의 실험들은 미 해군연구소의 보고서를 의식하여 주로 공기가 전혀 없는 진공 상태의 조건 하에서 자신의 장치를 실험한 것인데, 이 실험을 통하여 공기가 전혀 없는 상태 에서도 공중 부양 현상은 여전히 발생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던 것이다. 따라서 미 해군연구소 조사팀이 주장하는 첫 번째 결론 즉, 브라운 효과가 단순히 이온화된 공기들의 돌개바람 이라는 주장은 전혀 잘못된 것이며 실제로 중력 제어와 같은 미지의 새로운 힘이 발생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미 해군연구소 보고서에서 지적한 로켓 엔진과 의 효율성 비교 측면 역시 브라운 장치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쪽으로 이 당시의 몇몇 항공기술 전문 회사들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세계의 항공 기술 개발 동향을 전문적으로 조사 수집하는 싱크탱크 연구소인 영국의 항공기술연구소(Aviation Studies Ltd.)가 1956년 초에 작성한 보고서가 극히 최근에 와서 세상에 공개되어졌는데, 이 보고서에는 미래의 가장 유망한 새로운 항공 우주 기술로 브라운 장치를 거론하면서 그 자세한 연구 내용과 실험 결과들에 대한 정보 수집이 일찍이 추진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영국뿐 아니라, 당시 브라운에게 자금 지원을 거절한 미국 국방성 또한 마찬가지였음이 밝혀지고 말았다. 미 국방성에서는 1954년도부터 비밀리에 브라운 효과를 이용하는 새로운 비행체의 제작을 계획하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58년 1월 17일자로 기록되어 있는 실험 장면,

우산 형태로 생긴 전체 무게가 약 60g의 장치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여기에 164kV, 1mA의 고전압 전기를 흘려 보내자

이 장치가 서서히 공중으로 부상하는 장면이다.

만약에 바람을 이용하여 이러한 장치를 똑같이 공중으로 들어올리려면

적어도 초속 10피트의 풍속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장치가 공중 부상하고 있는 연구실 내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공기 흐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영상 장면은, 브라운 장치에서는 전기력에 의해 반중력과 유사한 새로운 힘이 발생하고 이 힘이 실제로 중력을 극복하여 공중 부상시킨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활발히 연구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행운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는 못하였다.

1964년에 밴슨 사장이 비행기 추락 사건으로 갑작스레 사망함으로써 연이어 브라운의 연구도 된서리를 맞았던 것이다. 그 이후 브라운 자신이 직접 진행한 연구 결과는 별로 없다. 1965년 당시 이미 브라운의 나이는 60세였으며 1985년에 80세의 나이로 임종을 맞기까지 브라운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다른 과학자들에게 소개하는 일만으로도 힘에 버거웠다.

최근에 와서는 전기-중력(Electrogravitics)이라고 명명되는 브라운의 전기-중력 조절 실험은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을 뿐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활발한 연구 실험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혁명적인 과학적 발견과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 이라는 천재적인 과학자의 이름은 그 어떤 과학 교과서에서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비펠드-브라운 효과]

1924년경 덴니선 대학에서 브라운과 비펠드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를 진전시켰던 전기-중력 제어 현상인 비펠드-브라운 효과(Biefeld-Brown Effect)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브라운은 고전압의 전기로 충전되어 있는 두 개의 축전지(Capacitor)사이에는 (-)극 쪽에서(+)극 쪽으로 밀어주는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을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 확인 하였다.

판대기 모양의 두 장의 콘덴서를 사용하여 한 쪽은 음극으로 충전시키고 다른 한 쪽은 양극으로 충전시켜서 실로 매달아두면 음극 쪽으로 밀려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을 수직선 상으로 위치시켜서 천칭 저울로 실험해보면 결과적으로 중량의 증가(가중력 현상)와 감소(반중력 현상)라는 결과가 나타난다. (-)극이 아래쪽에 위치해 있을 때는,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중량이 감소하는 반중력 현상이 나타나고, 이와 반대로 (-)극이 위쪽에 위치해 있을 때는,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가중력 상태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을 브라운은 '비펠드-브라운 효과'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단순하게 보이는 현상들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1860년대에 미카엘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이후, 전기력과 자기력 이라는 두 가지의 힘은 하나의 관계식으로 연결되어졌고, 현재는 전자기력이라는 용어로 통합된 상태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전자기력과 중력은 서로 관계가 전혀 없는 별개의 힘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들을 서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어떤 현상이나 관계식이 발견된 적도 없는 상태이다. 브라운은 자신들이 발견한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전기력에 의해 중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극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이 연구를 전기-중력학(Electrogravitics)이라고 호칭하였다.

브라운은 이 이론으로 UFO의 비행 원리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나아가 실제로 UFO와 유사한 비행기를 제작하는 데에 평생을 바치게 된다.

UFO가 중력에 반하여 서서히 수직 상승할 때는,

원반형의 비행체 아랫 부분은 (-)전기로 충전되고 윗 부분은 (+)전기로 충전된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비펠드-브라운 효과에 의해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추진력이 발생하여

비행체는 중력에 반하여 수직 상승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UFO가 공중에서 수평 비행할 때는,

비행체 앞 부분에 (+)전기가 충전되고 뒷부분에 (-)전기가 충전되는 상태로 변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수평적 추진력이 발생하여 비행체를 앞으로 밀어주게 된다.

UFO의 비행원리라고 추측할 수도 있는 이러한 전기-중력 발생 현상을 이용하여

UFO와 흡사한 형태의 새로운 자동차나 비행기를 실제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브라운은 생각하였다.

 

1929년에 '과학과 발명(Science and Invention)'잡지에 게재하였던 논문에서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중력 발생 장치는 실제로 대단히 유용한 새로운 형태의 동력 발생 장치이기도 하다.

현재의 대부분 전기 모터 장치들이 전자기 유도 현상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장치는 새로운 전기-중력 발생 현상을 이용한다. 단순한 모양의 중력 발생 장치에는 기존의 장치처럼 회전하는 기계 부분이 전혀 없으며 장치 자체가 전체적으로 움직여 나간다. 따라서 기존 동력장치 에서 필요한 기어나 동력 전달축 그리고 프로펠러 등이 전혀 필요없으며 그러면서도 아주 효율적인 동력 발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계적인 마찰 부분도 전혀 없으므로 열발생이나 기계적 마모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또한 수직 상승 비행이 가능하므로 비행 활주로도 필요없어진다... 수백 톤 규모의 대형 여객선에서 자그마한 자동차와 비행기 등의 제반동력 장치들에 이르기까지 이 방법으로 대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환상적인 이야기인 우주 스페이스 카도 가능할 것이며 이 스페이스 카를 타고 화성으로 날아갈 날이 조만간 오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1930년대 이후,해군에서 레이다 전문 기술 장교로 복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1940년대 초를 거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난 뒤,

중력 발생 장치 실용화 연구에 전념.

1952년에 브라운은 승무원을 탑승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공중 부상 비행체를 제작하기 위한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구상,

이온 바람에 의한 추진력 발생 이론.

브라운이 주장하는 전기-중력(Electrogravitics) 가설,

원반형 비행 접시의 아랫쪽에 (-)전기가 충전되고 윗쪽에 (+)전기가 충전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비행 접시가 중력을 거슬러서 수직으로 공중 부양하는 추진력이 발생한다.

이때 발생하는 추진력은 반중력과 같은 또다른 미지의 새로운 힘이라는 것이 브라운의 주장이었다.

과학자들의 주장:

이온 바람(Ionic wind) 개념.

고전압의 전기를 띠고 있는 물체 바로 주변의 공기층은 고전압의 전하에 의해 쉽게 이온화 되어진다.

비행 접시 형태의 콘덴서 장치 아랫 부분의 (-)전하는 주변 공기층을 (-)이온층으로 이온화시키는데,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윗부분의 공기층은 (+)이온층으로 이온화된다.

이러한 두 개의 이온화 공기층이 존재하면

자연스럽게 (-)이온화 공기층이 (+)이온 공기층으로 흘러가게 되며

이것이 이온 바람(Ionic wind)를 발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물체는 위로 들려올려지게 된다.

이온 바람의 개념을 따르게 되면 비행 물체가 위로 부상하는 추진력은

이온화 공기층의 흐름 즉, 바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공기가 희박한 높은 고도의 대기층이나 우주 공간과 같은 진공 공간에서는

추진력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주는 고진공이지만,희박한 수소가스가 존재한다,

그때문에 우주에서 추진이 가능하다,

1955년경,유럽 여행 중,프랑스 파리의 항공회사연구소의 협조하에

진공 상태에서 의 실험이 정밀하게 실시,

실험 결과 진공 상태에서 브라운 현상이 뚜렷하게 발생한다는 사실 입증.

1957년~1958년의 브라운-밴슨 연구소 시절에서도

두 차례 진공 챔버 속에서의 실험이 자체적으로 실시되었으며

1959년에 제너럴 일레트릭사 의 스페이스 센터에서도 진공 상태에서의 브라운 효과 실험이 실시되어,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도 브라운 현상은 확실하게 발생한다는 것을 검증해주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많은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1980년대 말 미 공군에서 직접 작성한 보고서

21 Century Propulsion Concept에는

21세기의 유망한 신 추진 동력 장치로서 브라운 효과 장치를 가장 먼저 손꼽고 있을 정도이다.

전기중력학(Electrogravitics)이라는 용어보다는

전기추진 동력(Electric Propulsion)이라는 용어가 보다 합당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폴 비오렛 박사의 말:

미국의 반중력 비행체(The U. S. Antigravity Squadron):

"오래전부터 미국이 전자 레이다망에도 잡히지 않는 비행체를

극비리에 개발하여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는데,

이 소문은 1988년 11월 사실로 판명되었다.

 

이때에 미 공군은 B-2 스텔스 폭격기라는 최첨단 비행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발표 하였으며,

이 비행체의 외형이나 역할,레이다 탑재 장치 등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매스컴에 공개했을 뿐,

대부분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1992년 3월,스페이스 테크놀로지 잡지에

이 비행기의 모습과 비행 원리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것은, B-2 스텔스 폭격기는 화살 모양의 날개 앞면과

뒤쪽의 꽁무니 부분에 강력한 전기장을 생성시켜

이로 인해 추진력이 발생한다.

1952년에 브라운은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정부 기관에 제안서를 송부하였었는데

반중력 비행체는 수직 이,착륙뿐 아니라 마하3의 초음속 비행까지 가능할 것임을 국방성에 제안,

미 공군의 유력 장군이 브라운을 직접 방문하여

그의 실험실 에서 18인치 크기의 알루미늄 디스크로 제작한

모형 반중력 비행체의 공중 부상 장면을 견학하였으며,

이듬해인 1953년에는 여러 명의 미 공군 장교들과 항공 기술 회사 기술자들 앞에서

3피트 직경의 모형 비행 접시 장치의 공중 부상 공개 시현이 행해졌던 것이다.

1956년에 영국의 항공기술연구소에서 대외비로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1954년 11월 이전,미공군 내에서는 브라운이 제시한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응용하여

실제 비행체 제작을 위한 연구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미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의 개발 연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중국의 자치정부들을 독립시키자,

文化革命,tibet 독립을 위하여.

본인은 원래 중국의 자치정부들의 독립에 관심이 없었는데,

KBS,MBC방송국의 방송내용을 보고서,

중국의 자치정부들의 독립에 관심을 가지게 된것이다,

 

본인은 원래 유태인,이스라엘인들에 대해 큰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본인은 원래 유태인,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가지고 있는게 옳다고 생각했는데,

KBS,MBC방송국의 방송내용을 보고서,

한국정부의 집권여당,야당,보건복지가족부의 일부 사람들의 발언등을 보고서,

유태인,이스라엘인들에 대한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뀔려고 하고 있으며

유태인,이스라엘인들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내어 쫒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본인은 원래 유태인,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가지고 있는게 옳다고 생각했는데,

[출처] 반중력 기술  작성자 아돌프 히틀러

+ Recent posts